120 년 전, 서양 의학이 한반도에 처음 뿌리내리던 시기에 쓰인 교과서가 다시금 역사적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이 1906 년 제중원에서 간행된 우리나라 최초의 한글 해부학 교과서 ‘해부학’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 예고한 소식은 단순한 유산 등재를 넘어, 근대 의학 교육의 시작점을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세브란스 병원의학교와 선교 의료기관에서 실제로 교재로 활용되었던 이 책은 서양 의학 지식을 우리말로 어떻게 소화해냈는지를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이 교과서가 가진 가장 큰 매력은 의학 용어를 한자나 외래어에 의존하지 않고 순우리말로 풀어썼다는 점입니다. ‘심장’을 ‘염통’, ‘위’를 ‘밥통’이라 표현한 것은 당시 의학 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는 노력이자, 우리말의 표현력을 극대화한 사례로 평가받습니다. 총 3 권으로 구성된 이 책은 뼈대와 근육의 기본 구조부터 주요 장기의 기능, 신경계와 감각기관의 작용까지 체계적으로 설명하며, 20 세기 초의 한글 표기법과 음운 변화를 연구하는 국어사적 자료로서도 귀중한 가치를 지닙니다.
현재 이 책이 주목받는 이유는 근대 의학 교육의 출발점을 상징하는 학술적·역사적 의미가 재평가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서양 의학이 국내에 도입되던 초기 교육 실태를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대표적 자료로, 인체 구조와 기능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은 체계적인 보존과 관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 및 소유자와 긴밀히 협력할 계획이며, 향후 학술 연구와 전시, 교육 자료로 적극 활용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앞으로 이 유산이 어떻게 보존되고 대중에게 다가갈지 주목해야 합니다. 단순한 기록물을 넘어 근대 의학의 역사가 담긴 문화유산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과정은 우리 의료사와 언어사의 흐름을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의 근현대 문화유산이 지속적으로 발굴되어 국민과 함께 향유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움직임 속에서, 이 교과서가 어떤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갈지 지켜볼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