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경주의 한국원자력연구원에서 13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단 한 건의 안전사고 없이 4만 시간의 운전 기록을 세운 시설이 화제입니다. 바로 100MeV 급 선형 양성자가속기입니다. 이 시설은 양성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가속해 물질에 조사하는 대형 연구 장비로, 단순히 물리 실험을 넘어 최근 급부상한 AI 반도체와 우주 부품의 신뢰성을 검증하는 핵심 인프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13 년 첫 가동 이후 꾸준히 가동률을 유지해 온 이 기록은 국가 대형 연구시설의 기술적 안정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국내 산업의 숨은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최근 AI 반도체와 고대역폭 메모리, 위성 부품 등 첨단 분야에서 방사선 영향에 대한 검증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가속기의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미세공정화와 고집적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에서 우주나 대기 중 중성자 같은 방사선에 의한 데이터 오류는 치명적인 신뢰성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환경에서도 오류 없이 작동하는 제품을 개발하고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려면, 실제 우주 환경과 유사한 조건을 단시간에 재현해 볼 수 있는 시설이 필수적입니다. 경주의 양성자가속기는 바로 그 역할을 수행하며, AI 데이터센터용 GPU 메모리 개발 과정에서 설계 결함을 보완하고 오류 발생 확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데 기여했습니다.
산업계의 요구가 거세지자 연구원도 운영 체제를 과감히 개편하며 대응했습니다. 2024 년 9 월부터 기존 8 시간 가동 체계를 24 시간 가동 및 서비스 지원 체계로 확대한 것입니다. 이로 인해 반도체 기업과 우주·항공 분야 연구자들의 시험 수요를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되었고, 지난 2025 년만 해도 연간 353 명의 연구자와 210 건의 실험을 지원하며 국내 첨단 산업 발전에 실질적인 기여를 했습니다. 누리호에 탑재될 반도체 소자가 우주 환경 내 동작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사전 검증을 거친 사례도 이 시설의 활용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이제 이 시설은 단순한 무사고 기록을 넘어 차세대 기술의 인증 관문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과기정통부와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현재 운영 중인 100MeV 급 가속기를 2026 년 4 월부터 200MeV 급으로 성능을 고도화하기 위한 선행 R&D 를 추진 중입니다. 200MeV 급 가속기는 자율주행차, 위성 기반 6G 통신, AI 데이터통신용 반도체 등 차세대 첨단 제품의 우주·대기 방사선 영향 평가를 위한 국제적 최소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 수준으로 기대됩니다. 해외 가속기 시설에 의존하던 국내 기업들이 평가와 시험 수요를 자국 내에서 완전히 충족할 수 있게 되면서, 반도체와 우주 산업의 패권 경쟁에서 한 발 더 앞서나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