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에 들어서면 마치 오래된 벽화처럼 겹겹이 쌓인 시간의 결이 느껴진다. 조각칼로 화면을 긁고 깎아내는 조삭 기법을 통해 완성된 이미애 작가의 신작들은 단순한 꽃 그림을 넘어, 작가 내면의 불안과 회복이 교차하는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두나무 아트큐브에서 15일까지 열리는 이번 개인전 ‘꿈꾸는 겁쟁이’는 서양화라는 장르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 작품들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덧칠과 삭제를 반복하는 과정을 통해 캔버스 위에 층층이 쌓인 기억을 남겼다. 이는 마치 봄이 오기 전 겨울의 잔해를 치워내는 자연의 순환과도 닮아있다. 조각칼로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해내는 행위는 단순히 그림을 완성하는 수단이 아니라, 과거의 상처를 드러내고 새로운 희망을 찾아내는 치유의 과정 그 자체로 해석된다. 화면 위에는 불안했던 순간들이 지워지지 않은 채 남아있지만, 그 틈새로 피어난 꽃들은 오히려 더 강렬한 생명력을 뿜어낸다.
이번 전시는 40 년 가까운 시간 동안 작가의 손끝에서 탄생한 결과물을 한자리에 모은 자리이기도 하다. ‘공주 감성’이나 화려한 장식보다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듯한 차분한 분위기가 관객들을 사로잡고 있다. 조각칼로 완성된 꽃 그림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봄이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생생한 현장감을 선사하며, 예술을 통해 일상의 불안함을 위로받는 경험을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