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지역의 지정학적 리스크가 고조되면서 글로벌 유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특히 중동 전쟁 발발 이후 유럽 경유 가격이 32% 가량 폭등한 데 비해, 한국은 8% 대의 상승폭으로 상대적으로 완만한 흐름을 보였다. 이는 1997 년 이후 처음 도입된 석유 최고가격제를 필두로 한 정부의 고강도 개입이 효과를 발휘한 결과로 분석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러한 인위적 통제만으로는 장기화될 수 있는 공급 충격에 대응하기 어렵다며 다양한 정책 수단의 병행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 오피넷과 정유 업계의 최근 데이터에 따르면, 유럽 20 개국의 3 월 넷째 주 자동차용 경유 평균 가격은 리터당 3538.7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한국 가격인 1815.8 원의 약 2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같은 기간 유럽 경유 가격은 3 월 첫째 주 대비 31.75% 급등했는데, 한국은 8.05% 상승에 그쳐 상승세가 4 배 가량 완만했다. 네덜란드, 덴마크, 핀란드 등 주요 국가는 리터당 4000 원대를 넘겼으며, 가장 저렴한 슬로바키아와 헝가리조차 한국보다 900~1000 원가량 비쌌다. 고급 휘발유 역시 비슷한 추세를 보이며 유럽 시장의 가격 부담이 얼마나 가혹한지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의 상대적 가격 안정은 지난달 13 일 전격 시행된 석유 최고가격제의 영향이 컸다. 제도 시행 1 주 만인 3 월 셋째 주 전국 주유소 휘발유 평균 가격은 전주 대비 72.3 원 하락한 1829.3 원을 기록하며 안정 효과를 입증했다. 일본 역시 리터당 30.2 엔의 보조금을 지급하며 한국보다 낮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고, 체코는 마진 제한을, 폴란드는 세율 인하를 단행하는 등 유럽 국가들도 가격 억제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단기적인 억제책만으로는 사태의 본질적인 해결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풀리더라도 원유 수급이 정상화되기까지 최소 3 개월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으며, 인위적인 가격 통제는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이라는 부작용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1 차보다 상한선을 높인 2 차 최고가격제 시행 후 유가는 급반등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8 일 기준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은 3 년 8 개월 만에 2000 원선을 돌파하기도 했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최고가격제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제한적인 활용을 권고했다. 제도가 장기화될 경우 재정 부담과 시장 왜곡이 심화될 수 있으므로 유류세 인하, 취약계층 직접 지원, 공급선 다변화 등을 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최고가격제와 내수 공급으로 다른 나라보다 가격 상승폭을 현저히 낮췄음을 인정하면서도,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내수 소비를 아끼고 공급선을 추가 확보하는 등 중장기적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