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의 속도가 인간의 사고 속도를 압도하는 시대가 왔다. 과거에는 5 년이나 10 년 단위로 수립한 장기 계획이 국가의 방향성을 제시하는 나침반 역할을 했지만, 생성형 AI 와 피지컬 AI 가 등장한 지금, 그 시간 간격은 너무도 길게만 느껴진다. 배경훈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최근 열린 과학기술·인공지능 미래전략회의에서 “기존에 잡은 장기 계획이 의미가 있는 것인가 고민이 된다”고 언급한 것은 단순한 회의록의 한 줄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직면한 구조적 위기의식을 대변한다. 기술의 진화가 너무 빨라 계획이 수립되는 순간 이미 과거가 되어버리는 아이러니 속에서, 우리는 이제 더 유연하고 즉각적인 미래 전략을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위기감이 반영되어 정부와 전문가들은 기존의 틀을 깨고 새로운 자문 기구를 출범시켰다. 과학기술·인공지능 미래전략회의는 단순한 연구자 모임이 아니라 경제, 산업, 교육, 의료, 문화, 법률 등 사회 전 영역의 전문가 17 명이 모여 첨단 기술이 각 분야에 미치는 영향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2020 년에 수립된 2045 년 미래전략에 생성형 AI 에 대한 로드맵이 부재했던 점을 지적한 배 장관의 말처럼, 이제는 특정 기술의 발전 속도뿐만 아니라 그것이 사회 전반에 어떻게 스며들고 인간과 공존할지에 대한 다각적인 시나리오가 필요하다. 단순히 기술을 따라가는 것을 넘어, 기술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사회 질서 속에서 우리가 어떤 역할을 할지 정의하는 작업이 시급해진 것이다.
대화의 초점은 이제 “한국이 앤트로픽의 미토스 같은 모델을 만들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 과거에는 과학적 원리가 미국이나 유럽에서 나오고 한국이 이를 적용하는 데 주력했다면, 이제는 엔지니어링과 프로덕션 능력, 그리고 이를 뒷받침할 인프라와 데이터의 조합이 경쟁력을 결정한다. 카이스트 신진우 교수는 컴퓨팅 인프라나 데이터의 부족을 극복한다면 산업적 역량과 인재, 정책을 잘 조합해 2~3 년 뒤에는 한국판 미토스를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세계 3 위권 경쟁력을 유지하는 것을 넘어,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고 세계적 수준의 모델을 만들어내는 주체로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하지만 기술적 성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김주호 교수는 AI 시대에 기술과 사람 사이의 보이지 않는 격차와 공존의 조건에 대해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응용 시대로 넘어가면서 우리의 일을 어떻게 바라볼지, AI 의 역할을 어떻게 정의하고 인간의 고유한 의미를 어떻게 남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 동반되어야 진정한 미래 전략이 완성된다. 이제 우리는 기술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바라보며, 인간 중심의 가치를 잃지 않는 선에서 기술 발전의 속도를 조절해나갈 새로운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분기별로 논의될 미래 아젠다들이 단순한 기술 예측을 넘어, 우리가 살아갈 사회의 모습을 어떻게 설계할지에 대한 실질적인 해답을 제시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