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장에서 전기차는 오랫동안 고가의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었다. 특히 프리미엄 브랜드를 선택하는 소비자들에게 전기차는 하이브리드나 내연기관 모델보다 최소 수백만 원에서 천만 원 이상 비싸다는 것이 상식처럼 통용되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이 오랜 공식이 무너지는 징후가 뚜렷해지고 있다. 포르쉐, 볼보, 렛서스 등 글로벌 주요 브랜드가 하반기에 출시할 예정인 전기차 라인업에서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가격을 낮게 책정하는 파격적인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포르쉐의 움직임이다. 브랜드의 수익을 책임지는 핵심 모델인 4세대 카이엔 일렉트릭의 기본형 가격이 1억 4230만 원으로 결정되었다. 이는 기존 가솔린 모델인 1억 4380만 원보다 150만 원이나 저렴한 수준이다. 더욱 극단적인 비교는 고성능 트림에서 나타난다. ‘터보 일렉트릭’ 모델은 기존 ‘터보 E-하이브리드’ 대비 3000만 원 이상 낮은 가격으로 설정되어, 전기차는 무조건 비싸다는 인식을 완전히 뒤집는 계기가 되었다.
볼보 역시 대형 SUV 시장에서 같은 전략을 구사하며 시장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전기 플래그십인 EX90 의 엔트리 트림 가격이 1억 620만 원으로 책정된 반면, 기존 하이브리드 모델인 XC90 T8 리차지는 1억 1520만 원 수준이다. 이 차이는 약 900만 원에 달하며, 볼보가 내연기관 기반의 하이브리드 수요를 순수 전기차로 빠르게 흡수하겠다는 의지를 명확히 보여준다. 렉서스의 경우에도 주력 세단 라인업에서 하이브리드 모델보다 전기차 모델의 시작가를 낮게 설정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서 ES350e 의 가격이 ES350h 보다 약 300만 원 가량 낮은 점을 볼 때, 국내 시장에서도 유사한 가격 경쟁력이 발휘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가격 역전 현상이 발생한 배경에는 배터리 가격의 안정화와 제조사들의 전략적 판단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통한 생산 효율 증대와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로의 전환은 초기 판매 수익보다는 생태계 선점에 집중하게 만들었다. 반면 하이브리드는 내연기관과 전동화 기술이 공존해야 하는 과도기적 복잡성 때문에 원가 절감에 구조적 한계를 겪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하이브리드 모델이 복잡한 구동계 구조로 인해 가격을 낮추기 어려운 반면, 전기차는 규모의 경제 실현으로 가격 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분석한다.
하반기 수입차 시장을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이 흐름은 소비자에게는 더 낮은 진입 장벽을 의미한다. 성능과 편의 사양은 높인 채 가격 문턱은 낮춘 전기차의 공세가 이어지면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고려하던 소비자들에게 전기차는 이제 하이브리드보다 합리적인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 단순한 가격 경쟁을 넘어 기술적 효율성과 시장 전략이 맞물려 만들어낸 결과인 만큼, 향후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간의 가격 역전 현상은 더 다양한 브랜드와 모델로 확대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