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자동차 산업의 오랜 서열에 균열이 가고 있다. 스즈키가 2026 회계연도에 혼다를 제치고 일본 내 2 위 자동차 제조사의 자리에 오를 것이라는 자신감 있는 전망을 내놓은 것이다. 이는 단순한 숫자 놀음이 아니라, 글로벌 자동차 시장의 판도가 어떻게 빠르게 변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스즈키는 향후 1 년간 차량 판매량이 7.1 퍼센트 증가한 355 만 대에 달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며, 반면 혼다는 339 만 대 수준에서 소폭의 증가만 예상하고 있다. 만약 이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스즈키는 1990 년대 이후 처음으로 혼다를 추월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역전극의 핵심 동력은 단연 인도 시장의 폭발적인 성장세다. 스즈키의 전체 판매량 중 무려 56 퍼센트 이상인 186 만 대가 인도에서 팔려나갔다. 세계 인구가 가장 많은 국가인 인도에서 스즈키의 입지는 이미 절대적이며, 이는 전 세계적으로 2.4 퍼센트 성장한 판매 실적을 뒷받침하는 주춧돌이 되었다. 반면 혼다는 전년 대비 8.9 퍼센트 감소한 338 만 대를 기록하며 성장 동력을 잃은 상태다.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스즈키의 인기 모델인 지미니가 철수하는 등 서구권에서의 입지는 축소되었지만, 아시아와 신흥국 시장에서의 강세는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강력하다.
시장의 반응은 스즈키의 전략적 선택이 얼마나 적중했는지를 보여준다. 북미 시장에서 스즈키의 부재가 아쉬움을 자아냈던 것과 달리, 인도와 같은 신흥국에서는 소형 SUV 와 경차 라인업이 폭발적인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혼다가 하이브리드와 전기차 전환에 주력하며 판매량이 정체되는 사이, 스즈키는 가성비와 실용성을 중시하는 시장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해 점유율을 확대해 왔다. 이는 자동차 산업이 단순히 기술력만으로는 승패가 결정되지 않으며, 지역별 시장 특성에 맞는 유연한 포트폴리오 관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시사한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스즈키의 이 상승세가 지속될 수 있을지, 그리고 혼다가 어떻게 반격할 것인지다. 스즈키의 2027 회계연도 목표인 355 만 대 달성은 단순한 숫자 목표가 아니라 일본 자동차 산업의 위상 변화를 상징하는 마일스톤이 될 것이다. 만약 스즈키가 실제로 혼다를 제친다면, 이는 일본 자동차 산업이 과거의 거대 브랜드 중심에서 신흥국 맞춤형 전략을 가진 브랜드로 중심축을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향후 혼다의 대응 전략과 스즈키의 글로벌 확장 속도가 어떻게 맞물려 움직일지, 산업 전반의 흐름을 읽는 중요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