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분양가상한제 단지에서 청약 시장의 이색적인 풍경이 포착되고 있다. 제도 취지인 주거 안정과 무관하게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린 대가족 가점 보유자들이 소형 평형에 몰리면서, 실제 거주 여부와는 별개로 청약 경쟁이 과열되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특히 서초구 잠원동 오티에르반포 신반포 21차 재건축 단지의 전용 44㎡ 청약 결과가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 단지는 5가구를 모집하는 데 3114건이 몰려 622.8 대 1이라는 압도적인 경쟁률을 기록했는데, 당첨자의 가점 범위는 최저 74점에서 최고 79점에 달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최고 점수가 5~6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만점이라는 사실이다. 방 2개와 욕실 1개로 구성된 13평 규모의 소형 주택에 5~6인 가족이 2년간 실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지만, 인근 시세 대비 20억~30억원에 이르는 차익 기대감이 이를 무릅쓰게 만든 것이다. 전용 59㎡A, 97㎡, 113㎡B 등 다른 평형의 최저 가점 역시 69점으로 형성되어 사실상 5인 이상 가구 만점 통장이 아니면 당첨이 어려운 구조로 굳어졌다. 전용 59㎡B의 경우 15가구 모집에 1만 7713명이 지원해 1180.87 대 1 경쟁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오티에르반포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앞서 4월 당첨자를 발표한 서초구 아크로드서초에서도 전용 59㎡C 2가구 모집에 2145건이 접수되었고, 최고 가점은 7인 가구 만점인 84점을 기록했다. 18평 안팎의 주택에 7명이 2년간 거주해야 하는 조건이 붙었지만, 17억원 이상의 시세차익이 예상되면서 대가족 만점 통장의 유입이 이어졌다. 최근 대출 규제 강화로 자금 조달 부담이 상대적으로 적은 소형 평형에 수요가 쏠린 점도 이러한 경향을 부추긴 요인으로 분석된다.
전체적인 청약 시장의 가점 인플레이션 추이를 보면 이 같은 현상이 구조적인 문제임을 알 수 있다. 한국부동산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 아파트 평균 청약 가점은 65.81점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으며, 부동산 R114 랩스 기준 강남 3구의 당첨 최저 가점 평균은 2020년 54.4점에서 지난해 69.5점으로 급등했다. 69점은 4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고 점수 수준으로, 사실상 중장년층 대가족에게 유리한 게임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위장전입 등 편법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2024년 래미안원펜타스에서는 만점 통장 당첨자 중 위장전입 사례가 적발되기도 했으며, 올 초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 역시 결혼한 장남을 부양가족으로 포함해 가점을 높인 ‘위장 미혼’ 의혹을 받으며 낙마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현행 가점제가 1~2인 가구가 늘어나는 인구 구조 변화와 맞지 않고 중장년층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지적한다. 권대중 한성대 경제부동산학과 교수는 연령대별 경쟁 구조 도입과 부양가족 인정 범위 명확화를 통해 위장전입을 줄이고 제도의 본래 취지에 맞게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