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브가 오랫동안 기다려온 차세대 VR 헤드셋인 스팀 프레임의 출시 시기가 다시 한번 불확실해졌다. 2025 년 11 월 공개 당시에는 2026 년 초 출시를 목표로 했으나, 2026 년 상반기로 미뤄진 뒤 최근에는 구체적인 일정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스팀 백엔드에는 여전히 ‘Coming Soon’이라는 표기가 유지되고 있지만, 실제 제품 선반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은 예상보다 훨씬 험난해졌다. 이 변화의 핵심 원인은 전 세계적으로 급증한 인공지능 데이터센터의 수요가 소비자용 고성능 메모리 공급을 잠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팀 프레임은 퀄컴 스냅드래곤 8 Gen 3 칩셋에 16GB 의 LPDDR5X 램과 최대 1TB 의 UFS 저장장치를 탑재할 예정이다. 문제는 이 부품들이 현재 AI 학습 및 추론 작업에 필수적인 고대역폭 메모리라는 점이다. AI 인프라 구축을 위해 기업들이 대규모로 LPDDR5 및 LPDDR5X 칩을 사들여가면서 시중 가격은 급등했고, 공급량은 급감했다. 밸브는 스팀 데크 OLED 도 같은 이유로 여러 지역에서 품절 상태를 겪고 있으며, 이는 스팀 프레임의 양산 계획에도 동일한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지점은 밸브가 초기에 밝힌 가격 전략의 붕괴 가능성이다. 2019 년 출시된 인덱스 키트의 999 달러라는 가격대를 밑돌 것을 목표로 했으나, 메모리 단가 상승은 이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프리미엄 부품인 16GB 램과 1TB 저장장치를 소비자 제품 수준으로 대량 수급하려면 기존 예상보다 높은 원가가 발생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밸브는 2026 년 4 월 공개적으로 공급망 위기가 배송 일정과 가격 정책을 재검토하게 만들었다고 시인한 바 있다.
이러한 상황은 단순히 한 기기의 출시 지연을 넘어, AI 붐이 어떻게 하드웨어 생태계 전체의 흐름을 바꾸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밸브가 어떻게 메모리 수급 문제를 해결하고 초기 가격 목표를 유지할지, 아니면 가격 인상과 출시 연기를 감수할지가 향후 VR 시장의 경쟁 구도에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2026 년 상반기가 지나도 구체적인 출시 날짜가 확정되지 않는다면, 이는 AI 산업이 소비자 가전 시장의 리소스를 얼마나 강력하게 흡수하고 있는지를 방증하는 결과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