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공간은 지구 상공에서 상상하기 힘든 극한의 방사선 폭풍이 일상이 되는 곳이다. 지구 저궤도만 하더라도 시간당 10만 개 이상의 고에너지 입자가 쏟아지는데, 기존 반도체는 이 환경에서 쉽게 오작동하거나 영구적으로 손상되곤 했다. 특히 초소형 위성 고장 원인의 64%가 우주 방사선 때문일 정도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해 왔지만,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이 난제를 해결할 열쇠를 쥐었다. 최근 열린 첨단전략반도체혁신콘퍼런스에서 연구팀은 우주 방사선 환경에서도 인공지능 연산이 가능한 차세대 나노 반도체 기술을 세계 최초로 검증해냈다는 사실을 공개하며 기술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번 검증의 핵심은 단순히 방사선을 견디는 수준을 넘어, 인공지능의 두뇌 역할을 하는 뉴로모픽 소자가 극한 환경에서도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한 데 있다. 연구팀은 인듐·갈륨·아연 산화물 기반의 시냅틱 트랜지스터를 제작해 33메가전자볼트급 고에너지 양성자 빔을 쏘아보았는데, 이는 지구 저궤도 위성이 20 년 이상 우주 방사선에 노출된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놀라운 점은 방사선 조사 후에도 소자의 스위칭 동작과 시냅스 가소성이 안정적으로 유지되었으며, 손글씨 인식 시뮬레이션에서 92.61%라는 높은 정확도를 기록했다는 사실이다. 이는 방사선에 노출된 상태에서도 AI 가 학습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지지 않음을 의미한다.
이 기술이 주목받는 배경에는 국내 국방 및 우주 전략자산이 처한 냉혹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우리 국방과 우주 분야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98% 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방사선 강화 등급의 상용 반도체는 국내에 전무한 상태였다. 과거 평면 트랜지스터 시절에는 방사선 입자 하나가 셀 하나만 망가뜨렸다면, 최근 보편화된 3D 적층 구조에서는 입자 하나가 칩 전체를 관통하며 시스템 전체를 마비시킬 수 있다. 영국, 미국, 일본 등 주요국들은 이미 이 기술을 상용화했고 미국 국방부는 전용 생산라인 확보에 막대한 투자를 단행한 상황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이번 성과는 이러한 기술적 격차를 좁히고 조달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자립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술이 실제 우주 임무에 적용되기까지의 과정이다. 연구팀은 개발된 기술을 실제 궤도 환경에서 최소 2 년간 검증해야만 시스템에 적용할 수 있다고 강조했는데, 이를 위해 경주에 위치한 100MeV 급 선형 양성자가속기의 성능을 200MeV 급으로 고도화하는 작업을 이미 시작했다. 또한 방사선 조사와 열 사이클을 동시에 재현할 수 있는 복합환경 시험 챔버도 하반기 가동을 앞두고 있다. 우주용 AI 반도체의 상용화가 현실화된다면, 단순한 기술 자립을 넘어 위성, 미사일, 전투기 등 전략자산의 신뢰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이제 한국은 우주라는 거대한 무대에서 AI 의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새로운 주자로 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