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보조금 정책의 방향성이 급격하게 틀어졌다. 당초 80점이라는 높은 문턱을 설정해 엄격한 심사를 예고했던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최종안을 발표하며 기준을 60점으로 대폭 낮췄다. 이는 단순한 숫자 조정이 아니다. 초기 제도가 도입될 때 지나치게 높은 기준이 참여 기업을 과도하게 줄여 국내 전기차 산업 생태계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서 비롯된 전략적 선택이다. 정부로서는 보조금 사업의 참여 주체가 너무 좁아져 시장 경쟁이 약화되는 것을 막고, 동시에 일정 수준의 기술력과 사후 관리 인프라를 갖춘 업체들이 안정적으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문턱이 낮아진 만큼 평가의 초점은 명확하게 이동했다. 총점 100점 만점 중 ‘공급망 기여도’ 항목이 40점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이는 정부가 더 이상 단순한 차량 판매량이나 가격 경쟁력만 보는 것이 아니라, 국내 산업 생태계와의 연계성을 최우선 지표로 삼았음을 의미한다. 국내에서 생산 라인을 가동하거나, 국내 부품업체와 공동으로 연구 개발을 수행하며, 국내 고용 규모를 확대한 기업일수록 높은 점수를 받게 된다. 특히 국내 배터리 셀을 사용하거나 국내 공장에서 배터리 팩을 조립한 경우, 그 가액 전체를 국내 조달 실적으로 인정하는 등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통해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평가 방식의 변화도 주목할 만하다. 당초 안에는 가점과 감점이 별도로 존재하는 복잡한 구조였으나, 최종안은 이를 간소화하여 100점 만점의 정량 평가 체계로 정리했다. 정성평가 비중을 줄이고 기술 개발 역량, 환경 정책 대응, 사후 관리 및 지속성, 안전 관리 등 5개 분야 13개 세부 항목을 명확한 수치로 평가한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들이 예측 가능한 기준에 맞춰 투자 계획을 수립할 수 있게 하며, 불필요한 행정적 혼란을 줄여주려는 취지가 담겨 있다. 6월 중순까지 서류를 준비하고 하순에 평가를 거쳐 7월 1일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될 예정인 만큼, 기업들은 이제부터 국내 공급망 강화에 대한 구체적인 데이터를 준비해야 한다.
이번 정책 변경은 국내 전기차 시장의 성숙도를 높이는 동시에 외부 충격으로부터 산업 생태계를 보호하는 이중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초기에는 진입 장벽을 낮춰 시장 활성화에 주력하다가, 제도가 안착되면 매년 평가 기준을 업데이트하며 필요한 부분을 점진적으로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 향후 국내 부품업체와 연구기관의 협력 모델이 어떻게 진화할지, 그리고 국산화 비율이 높은 기업들이 얼마나 빠르게 보조금 수혜를 받을 수 있을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는 단순한 보조금 지급 기준을 넘어, 한국형 전기차 산업의 자립도를 가늠하는 중요한 시금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