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도체 산업의 풍경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칩을 조립하는 수준에 그쳤던 기판 제조사들이 이제는 빛을 다루는 첨단 기술의 중심에 서고 있기 때문입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차세대 반도체 기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공동패키징광학’, 일명 CPO 기술 확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소식이 업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제품 라인업 확장을 넘어, 인공지능 시대가 요구하는 성능 한계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적 움직임으로 해석됩니다.
왜 하필 지금 CPO 기술이 화두가 되었을까요. AI 반도체의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기존 구리 선을 통한 전기 신호 전달 방식이 가진 물리적 한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신호가 길어질수록 속도가 떨어지고, 데이터 처리 과정에서 발생하는 열로 인해 전력 소모가 심해지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CPO 기술은 이러한 전기 신호를 빛으로 변환해 전송함으로써 속도는 높이고 전력은 아낄 수 있는 혁신적인 솔루션입니다. 마치 반도체 칩 패키지 내부에서 광 통신이 이루어지는 것과 같은 원리로, 실리콘과 광 기술을 융합한 ‘실리콘 포토닉스’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국내 두 기업의 움직임은 이러한 글로벌 흐름에 발맞추기 위한 선제적 대응입니다. 삼성전기는 이미 MLCC 등 수동 소자를 기판 내부에 집어넣는 임베디드 기판 투자를 확대해 왔는데, 이는 향후 CPO 부품을 탑재할 공간을 미리 확보하려는 사전 작업으로 읽힙니다. LG이노텍 역시 문혁수 사장이 주주총회에서 CPO 개발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으며, 실제로는 단순 검토를 넘어 광 도파로 등 핵심 부품의 시제품 평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직 초기 단계라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해외 주요 기업들이 CPO 도입을 추진하는 시점에 맞춰 기판 제조라는 핵심 역할을 선점하려는 의지가 엿보입니다.
시장의 반응은 기대와 긴장감이 공존합니다. 해외에서는 엔비디아, 브로드컴, 마벨 등 주요 칩 제조사들이 CPO 도입을 서두르고 있으며, TSMC와 삼성전자는 각각 올해와 2028년을 목표로 양산을 준비 중입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이 기판 제조라는 고유의 영역에서 CPO 구현을 위한 부품인 전기·광 전환 스위치나 트랜시버 등을 어떻게 탑재할지가 관건이 될 것입니다. 업계에서는 국내의 상용화 속도가 해외에 비해 다소 느리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기판이 CPO 구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신속한 기술 확보가 시장 선점의 열쇠가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이제 우리는 반도체 기판이 단순한 받침대가 아니라, 빛과 전기가 공존하며 AI의 성능을 극대화하는 핵심 플랫폼으로 진화하는 과정을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의 이번 도약이 향후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 어떤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지, 그리고 AI 인프라의 미래를 어떻게 바꿀지 지켜보는 것이 곧 트렌드의 흐름을 읽는 길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