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제퍼슨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이자 3 대 대통령으로 불리며, “모든 인간은 피부색과 관계없이 평등하다”는 사자후를 토해낸 계몽주의자로 기억됩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그 선언만큼이나 화려한 빛과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품고 있었습니다. 그는 흑인을 누구보다 사랑한다고 말했지만, 그 사랑은 정치적 이득이 필요할 때나 침대 위에서 쾌락을 누릴 때로 한정된 조건부였습니다. 밖에서는 흑인 노예들을 위한 자유의 투사로 등장했지만, 정작 자신의 농장 안에서는 그들을 가축처럼 취급하며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제퍼슨의 이중성은 특히 아내의 이복 여동생인 샐리 헤밍스를 통해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헤밍스는 흑인 노예의 딸로 태어나 당시 법에 따라 노예 신분을 면치 못했습니다. 제퍼슨은 40 대의 나이에 14 세였던 헤밍스를 자신의 침대로 끌어들여 여섯 명의 사생아를 낳게 했습니다. 이 아이들은 모두 노예 목록에 이름을 올렸으며, 제퍼슨은 가축의 번식을 부추기듯 흑인 노예들의 잠자리를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그에게 노예들은 이름 없는 재산일 뿐이었으며, 흑인 노예들끼리 아이를 가졌을 때조차 그 자식이 다시 자신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사실에 기뻐했습니다.
이러한 모순은 1803 년 루이지애나 매입 사건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제퍼슨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으로부터 광활한 영토를 1500 만 달러에 매입하며 미국의 영토를 두 배 이상 확장했습니다. 그는 이 땅을 자영농이 민주주의를 꽃피우는 공간으로 만들 꿈꾸었으며, 해방된 노예들도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루이지애나로 몰려든 것은 자유를 찾아온 흑인들이 아니라, 목화 재배를 위해 노예를 데리고 온 백인 농장주들이었습니다. 조면기의 발명으로 목화 산업이 급성장하면서, 더 많은 노예들이 이 땅으로 끌려 들어갔고 하얀 목화밭 위로 검은 노예들의 그림자가 겹치게 되었습니다.
제퍼슨의 윤택한 삶은 와인과 캐비어를 즐기며 비단옷을 입고 웅장한 저택에서 살 수 있었던 것이었으나, 그 모든 것은 노예들의 피와 땀 위에서 이루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는 민중의 고단함을 이해한다며 위선을 떨었지만, 정작 자신의 노예들은 채찍을 맞으며 일해야 했습니다. 그의 계몽주의 사상은 다른 대감의 노예들에게는 희망처럼 다가왔을지 모르나, 정작 제퍼슨의 농장에 있던 노예들에게는 속이 메슥거리는 위선으로 남았습니다. 결국 제퍼슨은 흑인의 단물을 경제적으로나 성적으로 모두 빨아먹으며, 미국 경제사의 한 페이지에 이율배반적인 흔적을 남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