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시장에서 사람과 자본, 그리고 지배구조를 동시에 설계해온 오너 경영자로 평가받는 조정호 메리츠금융그룹 회장의 행보는 단순한 성장 이야기를 넘어선다.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금융 계열사를 바탕으로 그룹 체제를 완성한 그는 학력이나 직급보다 실적과 실행력을 최우선 가치로 삼는 인재경영을 정착시켰다. 특히 회사 크기는 자본이 아니라 구성원의 생각 크기에 의해 결정된다는 원칙을 일관되게 강조하며 조직의 역량을 극대화해왔다.
이러한 경영 철학은 숫자로 명확하게 증명되었다. 2005년 증권과 화재를 합친 메리츠 자산이 3조 3000억 원 수준에 머물렀을 때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규모가, 2024년 말 기준 135조 4580억 원으로 불어나며 40배가 넘는 성장을 기록했다. 메리츠증권의 자본은 2000년 계열 분리 당시 2304억 원에서 2025년 말 8조 1654억 원으로 커졌고, 메리츠화재 역시 같은 해 순이익 1조 7105억원을 기록하며 업계 2위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성장의 핵심 동력은 권한 위임과 경영 전문화에 있었다. 계열사 CEO에게 사업 전권을 부여하고 성과가 입증되면 임기를 안정적으로 보장해 장기적인 성장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지원한 것이다. 2023년 화재와 증권을 지주의 완전자회사로 편입하는 포괄적 주식교환을 단행하며 ‘원 메리츠’ 체제를 구축한 결정은 한국 자본 시장에서 계열사 물적분할과 중복상장이 반복되던 흐름과 정반대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효율적인 자본 배분을 강화함으로써 계열사 간 시너지를 높인 셈이다.
조 회장은 “소유와 경영을 분리한다는 원칙 아래 우수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전권을 맡기고 구체적 경영 활동에는 간섭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가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단순한 경영 기법을 넘어, 오너가 자신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고 전문성을 가진 인재들에게 믿음을 주는 현대적 기업 지배구조의 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