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장의 심장부에서 흐르는 물, 그 순도가 곧 제품의 완성도를 결정합니다. 그동안 이 극미량의 불순물을 제거한 초순수 생산 기술은 일본과 미국의 기업들이 독점해 왔습니다. 하지만 5 월 19 일, 경북 구미의 에스케이실트론 사업장에서 열린 성과 활용 협약식은 이 긴 의존 관계에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습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주도한 국산화 기술 개발 사업의 결실인 초순수 실증설비가 민간 기업에 공식 이전되면서, 국내 첨단 산업의 숨은 혈관이 이제 우리 손으로 막힌 곳을 뚫게 된 것입니다.
초순수는 단순히 깨끗한 물을 넘어 반도체 웨이퍼 표면의 오염물질을 씻어내는 필수적인 공정용수입니다. 이온물질 농도를 1 조분의 1 수준으로, 용존산소 농도를 10 억분의 1 수준으로 관리해야 하는 이 기술은 그간 해외 기업들의 높은 진입 장벽이었습니다. 특히 2021 년부터 추진된 국산화 사업은 설계부터 시공, 운영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국내 기술을 적용해 왔습니다. 자외선 산화장치, 탈기막, 이온교환수지 등 핵심 장치를 국산으로 개발해 장기간 운영 실적을 확보한 결과, 이제는 실제 반도체 제조 라인에 공급되는 첫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이번 기술 이전이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기술 습득을 넘어 공급망의 안정성을 확보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글로벌 공급망이 불확실해지는 시기에 핵심 소재의 자립은 곧 산업의 생존 전략이 됩니다. 에스케이실트론 구미사업장에 설치된 설비가 실제 반도체용 웨이퍼 생산에 투입되면서, 국내 물기업들은 이제 해외 기술 의존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시장 진입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이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스플레이, 이차전지, 바이오 등 다양한 첨단 산업 전반에 걸쳐 기술 경쟁력을 높이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앞으로 주목해야 할 점은 이 기술이 어떻게 확장되어 나가는가입니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하수 재이용 기반의 초순수 생산 기술 개발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로 인한 공업용수 부족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원수 다변화 기술을 추진 중인 만큼, 향후 국내 물산업이 단순한 공급자를 넘어 자원 순환의 중심축으로 자리 잡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반도체 산업의 대규모 투자가 국내 물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실제로 작동할지, 그 첫 단추가 잘 끼워진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