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전세 시장의 풍경이 빠르게 변하고 있다. 전세 매물이 줄어든 데다 갱신계약 시 보증금이 크게 오르고 월세 부담도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솟으면서 실수요자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특히 계약갱신요구권을 이미 소진한 세입자들은 재계약 시점에 시장 가격에 맞춰 수억 원대의 추가 보증금을 요구받는 경우가 잇따르고 있어 시장의 경색감을 가중시키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 중 갱신요구권을 사용하지 않은 계약은 9096건에 달했다. 이 중 85.9%인 7818건은 기존보다 보증금이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평균 증액액은 4793만원으로 5000만원에 근접했다. 5월 신고분으로 넘어가면 평균 증액분은 5229만원까지 상승했다. 반면 같은 기간 갱신요구권을 행사한 계약의 평균 증액분은 2876만원에 그쳐, 권리 사용 여부에 따라 세입자의 부담이 약 2000만원 차이 나는 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났다.
고가 주택이 밀집된 강남·서초·송파·용산 지역의 부담은 더욱 극심하다. 송파구 풍납동 현대리버빌 1차 전용 84㎡는 지난 4월 기존 보증금 3억 7000만원에서 4억 3000만원을 더 보태 총 8억원에 갱신계약이 신고됐다. 강남구 대치동 개포우성 1차 전용 127㎡는 기존 6억 5000만원의 두 배인 13억원에 재계약됐으며,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84㎡는 무려 7억원 오른 20억원에 거래됐다. 용산구 나인원한남 전용 206㎡는 기존보다 23억원 오른 63억원에 전세 갱신계약이 체결된 사례도 확인됐다. 모두 갱신요구권이 사용되지 않은 계약들이다.
앞으로 갱신권을 소진한 세입자가 늘어날 경우 시장 충격은 더 커질 전망이다. 서울 아파트 전세 갱신계약 중 갱신권 사용률은 지난 1월 57.9%에서 4월 51.4%로 하락했다. 신축 단지의 첫 갱신 주기가 대거 돌아오는 2026~2027년부터는 시장 가격에 노출되는 세입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세 부담을 감당하지 못한 수요는 월세 시장으로 밀려나고 있으며,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 4월 서울 아파트 월세가격지수는 102.74로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과거 일부 고급 주택에 국한되던 고액 월세도 강북권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올해 1분기 강북 14개 구에서 300만원 이상 월세로 체결된 신규 계약은 전년 동기보다 53.4% 급증했다. 이는 강남 3구의 증가율인 21.2%를 두 배 이상 웃도는 수치다. 동대문구 용두동과 노원구 상계동 등에서도 보증금 1억~1억 5000만원에 월세 300만원 이상을 지불하는 계약들이 확인됐다. 지난해 서울 상용근로자의 월평균 임금이 455만원임을 고려할 때, 월세 300만원은 일반 직장인 급여의 3분의 2에 달하는 부담이다.
신축 아파트 공급 부족과 다주택자 규제, 토지거래허가제 영향으로 임대 물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신축 프리미엄까지 겹치며 전월세 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지고 있다. 현장에서는 이사할 수 있는 매물 자체가 희소해 전세는 갱신권 종료 후 시장 가격을 따라 급등하고, 이에 따른 불안감으로 세입자들이 고액 월세도 감수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향후 신축 단지 갱신 주기가 본격화되면 전세 시장의 변동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