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낀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사물이 흐릿하게만 보이는 것은 상식처럼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진이 이 상식을 깨는 기술을 선보여 주목받고 있습니다.
빛이 심하게 흩어지는 환경에서도 인공지능과 광학 원리를 활용해 투명한 물체의 원래 모습을 한 번의 촬영만으로 찾아내는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사진 선명도를 높이는 것을 넘어, 기존 광학 장비로는 접근하기 어려웠던 투명 물체의 내부 구조와 두께까지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게 해줍니다.
## 빛의 산란을 역으로 추적하는 새로운 방식
기존의 기술은 안개나 불투명한 막 뒤에 숨은 물체를 보려면 여러 번 촬영하거나 미리 산란 환경을 측정해야 했습니다. 특히 빛이 물체를 통과할 때 생기는 미세한 변화를 분석하는 위상 영상 기술은 살아 있는 세포를 염색하지 않고 관찰하거나 반도체의 투명 부품을 검사하는 데 필수적이었습니다.
문제는 산란층이 움직이면 빛의 경로가 계속 바뀌어 정확한 정보를 얻기 힘들었다는 점입니다.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장무석 교수 연구팀은 이러한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점조명 방식을 도입했습니다.
돋보기로 빛을 한곳에 모으듯 첫 번째 산란층을 통과한 빛이 물체의 정보를 최대한 안정적으로 담도록 한 것입니다.
이후 연구팀은 빛이 물체와 산란층을 통과하며 어떻게 변하는지를 계산하는 광학 모델과 인공지능을 결합했습니다. 일반적인 인공지능이 수많은 정답 사진을 미리 학습하는 방식과 달리, 이 기술은 물리 법칙에 따라 빛이 어떤 경로로 거쳐 왔는지를 거꾸로 추적합니다.
마치 안개 속에서 흐릿하게 찍힌 사진 한 장만 보고 안개를 걷어내듯 원래 모습을 복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한 번 촬영한 영상만으로 투명 물체의 모양과 두께는 물론 빛이 얼마나 산란됐는지, 물체가 어디에 있는지까지 동시에 알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 산업 현장과 생명 과학에 미칠 파장
이 기술이 주목받는 이유는 실제 산업 현장과 생명 과학 분야에서 즉각적인 활용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반도체나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투명 부품의 결함을 검사할 때 기존 방식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한 전처리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단일 촬영 위상 영상 기술은 별도의 학습 데이터 없이도 산란층이 움직여도 안정적으로 작동합니다. 이는 생산 라인의 속도를 높이고 검사 정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특히 안개 낀 유리창 너머의 물체를 선명하게 보는 것처럼, 기존 광학 장비로는 검사하기 어려웠던 광학 소재를 더욱 정밀하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생명 과학 분야에서도 이 기술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합니다. 살아 있는 세포를 관찰할 때 염색을 하지 않아도 세포의 형태와 광학적 두께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이는 세포에 손상을 주지 않고 장시간 관찰할 수 있게 해주는 핵심 기술이 될 수 있습니다. 연구팀은 다양한 산란 환경에서 기존 단일 촬영 위상 복원 기술보다 물체의 경계와 세부 구조를 더욱 선명하게 복원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김유선 석사과정과 송국호 박사과정이 공동 제1저자로 참여하고 장무석 교수가 교신저자를 맡은 이번 연구는 광학 분야에서 중요한 이정표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기술이 상용화되면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이미지의 질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안개나 비, 혹은 불투명한 막 뒤에 가려진 물체를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차세대 광학 센서가 개발될 가능성이 큽니다.
장무석 교수는 더 복잡한 환경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는 기술로 발전시켜 반도체 검사와 바이오 영상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빛의 경로를 역으로 추적하는 이 새로운 접근법은 단순한 기술 발전을 넘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꿀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안개 속의 투명 물체도 더 이상 숨겨진 비밀이 아닌, 선명한 관찰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