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부천의 한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로 순직한 소방관의 비극적 사연과 함께, 화재를 키운 원인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17일 오전 경기남부경찰청과 소방, 국립과학수사연구원, 한국전기안전공사 등 4개 기관 조사 인력 20여 명은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시너 등 인화성 물질이 담긴 통 180여 개가 발견됐다.

감식팀은 일부 용기가 개방된 상태였으며, 톨루엔 성분이 포함된 유증기에 정전기나 마찰열로 인한 스파크가 붙으면서 급속도로 번졌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된 시너 보관 장소는 불이 시작된 3층 금속 세척실과 불과 1~2m 거리밖에 떨어지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초기 진화팀이 3층에 도착한 이후 불길이 시너 통으로 옮겨붙으면서 화재 규모가 급격히 커졌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바닥에 깔린 유증기가 점화원에 의해 폭발하면 순간적인 화염이 실내 전체로 퍼지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번 화재로 심정지 상태에 빠졌던 44살 고 김진석 소방위는 결국 17일 새벽 0시 55분 순직했다. 13년 차 소방관이었던 그는 24시간 근무를 마치고 아침 9시 퇴근을 앞두고 있었으나, 8시 38분 접수된 신고를 받고 5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동료와 함께 2인 1조로 가장 먼저 공장 안에 진입해 20여 분간 진압 활동을 벌이다 거세진 화염과 연기에 고립됐으며, 구조 당시 이미 심정지 상태였다.

유족은 김 소방위가 내년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을 두고 떠났다고 전하며 깊은 슬픔을 표했다. 소방 당국은 고인에게 소방장에서 소방위로 1계급 특진 예우를 하고 훈장 추서를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이재명 대통령은 같은 날 오후 6시쯤 순천향대 부천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를 찾아 조문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이 대통령은 방명록에 고인의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뜻을 적었으며, 영정 앞에서 직접 들고 간 옥조근정훈장을 추서했다.

한편 전국공무원노조 소방본부는 지휘관이 현장 내 위험 물질 정보를 파악한 후 진입 명령을 했어야 한다는 절차적 미흡함을 지적하며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현재 33명 규모의 수사전담팀을 편성해 업주 등에 대한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적용 등을 검토하고 있다. 이번 사건은 산업 현장의 화학물질 관리 부실과 소방관 안전 대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