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팬데믹 대응 과정에서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투입해 확보한 백신 물량의 상당 부분이 한 번도 접종되지 못한 채 폐기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질병관리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 년 이후 국내에 도입된 백신 총량은 2 억 2964 만 회분에 달했으나, 이 중 6618 만 회분이 사용되지 못하고 폐기됐다. 전체 도입 물량의 28.8% 에 해당하는 이 수치는 10 개 중 3 개가 낭비된 것과 같은 규모로, 국민 혈세 손실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폐기된 백신의 대부분은 유효기간 만료에 기인한 것으로 파악된다. 연도별 폐기 추이를 살펴보면 2021 년 170 만 회분에서 시작해 2022 년 1007 만 회분, 2023 년 1875 만 회분으로 급증했으며, 특히 2024 년에는 3328 만 회분까지 불어났다. 이는 초기 도입 당시의 수요 예측이 실제 접종 상황에 비해 과도하게 높았거나, 유통 과정에서 재배분 및 활용 방안이 적시에 마련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 반면 실제 접종에 사용된 물량은 1 억 5266 만 회분, 해외 공여 물량은 1024 만 회분으로 집계됐다.
백신 폐기에 투입된 구체적인 예산 규모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질병관리청은 제조사와 체결한 선구매 계약에 비밀 유지 조항이 포함되어 있어 단가와 세부 조건을 밝히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다만 업계에서는 폐기된 물량의 규모를 고려할 때 수조 원 단위의 예산이 손실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질병청 측에서는 대유행 당시 신속한 백신 확보와 접종 대응을 위해 일정 수준의 폐기는 불가피했다는 설명을 덧붙이며, 이는 한국뿐만 아니라 주요 국가들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해명했다.
김미애 의원은 이번 폐기 규모가 엄중히 검토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며, 향후 감염병 대응 과정에서 유사한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히 폐기량 증가 추이를 볼 때 단순한 확보를 넘어 수요 변화에 맞춘 물량 조정과 재고 관리 체계 전반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백신 확보뿐만 아니라 활용과 관리를 아우르는 전 주기 대응체계를 정비하는 것이 향후 감염병 위기 관리의 핵심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